서론
문학의 영향력 -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바탕으로
본론
결론
문학은 인간이 끊임없이 사고하고 조직하여 만들어낸 문화장르다. 문화는 시대별로 유행을 타기 마련인데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햄릿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햄릿의 사색적 성격은 19세기의 낭만주의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당시 낭만파 음악가인 쇼팽,슈베르트,리스트의 작품의 영향을 받아, 햄릿은 당대 최고의 희곡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으나 19세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이 안되어 먼 타 대륙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문학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쓰여지는 종류와 방식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두 시대를 넘나들은 문학자로 ‘셰익스피어’가 있다.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기에 태어난 그는 90년대 런던에 페스트균이 창궐하던 무렵 극작가로서 자신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통하여 후원자인 사우샘프턴 백작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셰익스피어는 인간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연거푸 발표하였으며, 낭만적인 문학적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쓰여진 그의 희극들은 런던을 아울러 영국 역사상 사랑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중 가장 잘 녹여져 서민들에게 흘러들었다.
엘리자베스의 시대가 저무는 시대에 들어서자, 인간의 고뇌와 절망과 죽음을 주제로 다룬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는 작가의 우울한 심사와 절망적인 세계관이 담겨있다고 재평가받았다. 시대에 공존한 시민들의 정서 역시 불안과 우울의 심도가 깊다는 작가의 희곡 작품 속에서 돋보였다. 엘리자베스를 이은 제임스 1세가 ‘그룸즈 오브 더 체임버’를 셰익스피어에게 수여했다는 점과 사우샘프턴 백작의 석방을 주된 행위로 셰익스피어의 극작 활동을 지원했다는것은 스튜어트 가문이 얼마나 연극을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영국의 희곡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제임스 1세 이후, 긴장감을 증폭시켜 나가던 대작극에서 가정비극, 풍자희극, 감상적인 희비극 혹은 퇴폐적인 비극으로 그 축이 바뀌었다. 기록에 따르면 로맨스극인 템페스트는 극작가가 귀족들을 위한 공연만 하였다고 하지만, 평민들에게 가정의 사랑 패러다임을 바꾸었을만큼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 내면에 도사린 다양한 면모들을 극적이면서도 시적으로 잘 드러내 보인 뛰어난 운문 문학의 절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관련된 논문이 매년 집필될 정도로 그의 문학작품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앤서니 홀든의 말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스트,페미니스트, 탈식민주의론자 등이 저마다 입맛에 맞게 셰익스피어를 난도질한지도 오래다.” 라고 정의내릴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영향은 다양한 사상과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현재까지 셰익스피어에 관한 연구, 저술, 공연 등 산업·문화활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본 소논문 본론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문학장르 중 희곡, 그림, 영화계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고자 한다.